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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빠와 떠나는 산성길 역사여행- 침략의 역사가 오롯이 새겨진, 고려시대

이정선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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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의 역사가 오롯이 새겨진, 고려시대

강화산성

침략의 역사가 오롯이 새겨진, 고려시대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산성으로는 강화읍을 에워싸고 있는 강화산성이 꼽힌다. 몽골의 침입으로 백성과 국토가 수난을 당하자 1232년 도읍을 강화로 옮기고 궁궐을 지었는데 이게 바로 강화산성이다. 산성의 역할이 원래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지만 외세의 침입에 찢기고 허물어진 역사는 아무래도 서글프다. 전북 무주의 적상산성, 전남 장성의 입암산성 그리고 통영의 당포성지까지, 고려시대의 산성을 소개한다.

강화산성
강화읍을 에워싸고 있는 고려시대의 산성. 몽골의 침입으로 백성과 국토가 수난 당하자 당시 실권자인 최우는 1232년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다. 성은 흙으로 쌓았고 내성·중성·외성으로 이루어졌다. 약 1200m의 내성이 지금의 강화성이다. 중성은 내성을 지키기 위해 쌓았고 외성은 1233년 강화 동쪽해안을 따라 쌓았다. 외성은 몽골군이 바다를 건너 공격하지 못하게 한 가장 중요한 방어시설이었다.
1270년(원종 11) 개경으로 수도를 다시 옮긴다. 이때 몽골과의 강화조약으로 성을 모두 헐게 된다. 허물어지고 파헤쳐지는 역사의 시작이었다. 조선 중기, 내성이었던 강화성을 축소해 다시 지었으나 1637년 병자호란때 또 파괴된다. 1677년(숙종 3) 파괴된 성을 다시 돌로 쌓고 넓혔다.
남문인 안파루 북문인 진송루 서문인 첨화루와 동문인 망한루가 남아있으며, 비밀통로인 암문 4개와 수문 2개가 남아있다. 높은 곳에서 망을 보기 위한 장대와 성위에서 몸을 감추기 위한 여장 등의 방어시설도 갖추고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여장은 모두 무너졌다. 산성의 동쪽 부분은 없어졌고 남북쪽 산자락은 잘 보존되어 있다. 조선 후기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비롯해 일본 침략에 의한 강화조약을 체결한 수많은 외세 침략의 역사를 품고 있다.
볼거리&즐길거리: 강화산성길, 초지진, 덕진진, 마니산, 참성단, 고인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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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암산성
전북 정읍의 갓바위산(626m) 능선을 따라 축조된 전남 장성의 입암산성. 고려시대 이전부터 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어지는 포곡식 산성이다. 문헌상으로는 1236년 몽골의 제3차 침입 때 장군 송군비가 수축했고 이후 여러 차례 개축되었다고 전해진다.
옹성식 남문의 문도와 주변의 배수구시설, 성벽축조 방식이 특이해 눈길을 끈다. 특히 성내에 크고 작은 방축을 두어 수원을 확보했다. 장기간 농성을 고려한 구조다. 또 남문은 문도 중앙에 암거를 가진 수구 형식으로 되어 있고 문구부 내외에 문돈을 겸한 옹성식 문도를 형성하고 있는 매우 귀중한 유적이다.
남문에서 50m 떨어진 곳에 집수용 연못이 있고 출수를 위한 배수구가 원형대로 남아있다. 자연암반의 경사면을 이용한 배수구는 그 위에 방위를 놓아 외부에서 보이지 않도록 엄폐된 특수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볼거리&즐길거리: 축령산 편백나무숲, 홍길동 테마파크, 필암서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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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포성지
1374년(공민왕 23)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최영 장군이 수많은 병사와 주민을 동원해 쌓은 경남 통영의 성이다.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점령당했으나 이순신 장군이 다시 탈환하는 등 한반도 남쪽 해안가의 역사를 품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석축의 길이는 752m 정도. 평평한 자연석을 일렬로 배열해 기단석을 삼고 1자쯤 들여서 다시 자연석으로 바깥벽을 수직으로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축성되었다. 고려말 조선초에 축성된 산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성의 전형이다.
남쪽 해안에 정문을 두고 산 쪽으로 동문과 서문을 두었으며 문에는 옹성을 쌓았는데 그 형태도 대체로 잘 보존되어 있다. 남쪽 일부 석축이 무너졌으나 동서북쪽 망루 터는 양호하다.
볼거리&즐길거리: 소매물도, 통영 케이블카, 충무김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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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산성
전북 무주의 적상산(1029m)은 신라와 백제가 각축을 벌였던 요지였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산이 험준하여 오르기가 힘들고 위에는 평탄한 분지가 있어 병기와 건물을 짓고 숨어 있을 수 있다'고 적혀있다. 적상산성은 고려말 거란족의 침입에도 무사했던 이곳 사람들을 보고 최영 장군이 왕에게 청해 산성을 지었다고 전하기도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고려사><세종실록지리지> 등의 기록과 시대적 정황을 볼 때 백제시대에 혹은 고려시대 중엽 이전에 축성했다고 추측한다. 1612년(광해군 4) 이곳에 실록전이 세워졌고 1614년에는 사각이 만들어졌다. 1641년(인조 19)에는 선원각·군기고·대장관이 건립되었다. 지금은 성벽이 무너져 울창한 숲 사이로 그 모습을 엿볼 수 있을 뿐 사각과 건물들은 터만 남아있다.
볼거리&즐길거리: 무주구천동, 무주리조트, 부남 강변유원지, 반딧불이 서식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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