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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빠와 떠나는 산성길 역사여행- 조선

이정선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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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을 지키려는 간절함이 스며있는, 조선시대

해미읍성

도성을 지키려는 간절함이 스며있는, 조선시대

역시 시대가 바뀌어도 산성은 그 지역을 보호하기 위한 역할이 컸다. 한양을 에워싸고 있는 서울성곽은 내사산(낙산, 남산, 인왕산, 백악산)을 연결한 17km의 산성이고, 남한산성 역시 북한산성과 더불어 수도 한양을 지키기 위해 축성되었다. 더불어 수도권의 수원화성, 충청지역의 상당산성과 해미읍성 등 각각의 산성이 품은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살아 숨 쉬는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지 않을까.

서울성곽
조선시대 서울을 감싸던 도성. 1395년(태조 4) 서울을 방어하는 도성의 역할을 위해 만들어졌다. 성벽은 내사산으로 불리는 백악산·낙산·남산·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다. 성에는 숭례문(남대문)·숙청문(숙정문)·흥인지문(동대문)·돈의문(서대문)으로 불리던 사대문을 냈고 그 사이사이에 홍화문·광희문·소덕문·창의문 사소문을 냈다. 흥인지문(동대문)만 옹성을 쌓았고 숙청문(숙정문)은 암문으로 해 문루를 세우지 않았다. 남대문은 1396년, 동대문 옹성은 1399년 완성되었다.
성벽 곳곳이 조선시대를 오롯이 품고 있어 걷는 재미와 보는 재미에 아는 재미를 더했다. 서울 시민들의 휴식처로 또 운동코스로도 사랑받는 ‘서울성곽길’이다. 특히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야경이 아름다워 데이트하는 이들이 즐겨 찾는다.
볼거리&즐길거리: 남대문, 동대문, 남산, 백악산(북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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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
고려말 국정이 혼란한 틈을 타 왜구가 해안지방에 침입해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일이 잦았다. 이를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1417년(태종 17)부터 1421년(세종3)사이 덕산에 있던 충청 병마절도사영을 서산시 해미면에 옮기면서 해미읍성을 축성했다. 1652년(효종 3) 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옮겨가기 전까지 200년 넘게 군사권을 행사했다.
해발 130m인 낮은 구릉에 넓은 평지를 품고 축조된 성으로 동서남북 4곳에 성문을 두었다. 주 출입구인 남문은 아치모양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미읍성에는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유적도 일부 남아있다. 적의 접근을 막기 위해 주변에 탱자나무를 돌려 심어서 탱자성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볼거리&즐길거리: 황금사, 서산 마애삼존불, 개심사, 보원사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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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
고려후기부터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선 전기에 흙으로 쌓은 성이다. 1397년(태조 6) 처음 쌓았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1424년부터 여러해에 걸쳐 돌로 다시 성을 쌓아 규모를 넓혔다’고 한다. 동서남쪽에 성안의 큰 도로와 연결되는 문이 있고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 성의 일부가 성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성안의 마을은 전통적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당시 생활풍속과 문화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낙안읍성은 읍성 가운데 보존 상태가 좋은 것들 중 하나이며 조선 전기의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볼거리&즐길거리: 순천만, 선암사, 송광사, 고인돌공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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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축성 당시 원형을 거의 갖추고 있는 수원화성은 정조가 선왕 영조에 의해 뒤주 속에서 세상을 떠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팔달산 아래 수원으로 옮기면서 만들어졌다. 화성은 수도 서울의 남쪽 방어기지의 역할 뿐 아니라 강력한 왕도정치를 실현하려는 정조 자신의 원대한 구상을 위한 계획적 신도시이기도 했다.
거중기, 녹로 등 신기재를 사용해 만들어진 화성은 당시의 기술을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예술적인 아름다움까지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의 문화적 역량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6km에 달하는 성벽을 따라 팔달문·장안문 등 40개 이상의 시설물을 만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다.
볼거리&즐길거리: 광교산, 융·건릉, 용주사, 월드컵 경기장, 수원양념갈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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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북한산성과 더불어 서울을 지키던 산성의 하나로 경기도 광주에 자리했다. 신라 문무왕 때 쌓은 주장성의 옛터를 활용해 1624년(인조 2)에 축성했다.
성안에는 관아와 창고 등 유사시에 대비해 모든 시설을 갖추었고 7개의 절까지 세웠다. 인조 때부터 순조 때에 이르기까지 성내의 시설 확장은 계속되어 임금이 거처할 행궁을 비롯해 관아를 비롯해 군사기관 등의 시설이 들어섰다. 남한산성 축성에 8도의 승군이 동원되었고 이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전부터 있던 망월사·옥정사 외에 7개 절이 세워졌다. 오늘날에는 장경사만 남아있다.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들인 성이었으나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성문을 열어 화의했다. 남한산성은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의 성터였다고도 한다.
볼거리&즐길거리: 도자기박물관, 자전거도로, 얼굴박물관, 정지리 생태공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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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성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축성방식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평지 읍성. 경남 거제 계룡산 기슭의 동쪽으로 뻗은 대지 위에 자리했다. 성문이 동서남 세 방향으로 나 있고 성 둘레에는 해자를 둘렀다.
1592년(선조 25) 5월, 임진왜란 때 왜구에 함락되기도 하는 등 남해안 수군 진영에 이웃한 요새였다. 1663년(현종 4) 관아를 지금의 거제읍으로 이전함에 따라 읍성의 기능을 잃었다. 1950년 6·25전쟁 전에만 해도 원형에 가까운 성벽이 보존되어 있었으나 UN군에 의하여 포로수용소가 설치될 때 성의 일부를 헐어 현재는 남서쪽 부분 600m 정도만 옛 성벽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볼거리&즐길거리: 해금강, 학동 흑진주몽돌해변, 동백섬 지심도, 거제 자연휴양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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